이꽃님 작가의 청소년 장편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시간의 틈을 넘어 만난 두 소녀의 우정과 성장, 그리고 연대의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 배경과 2017년이라는 현재가 교차하는 서사 구조 안에서, ‘다름’을 이해하고 ‘같음’을 발견하는 이야기. 이 소설은 타임슬립 판타지라는 외형을 지녔지만, 그 속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진심과 희망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벽을 넘은 만남, 타임슬립 소녀의 편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우정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서윤재’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소녀 ‘박해솔’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현실과는 다른 시공간 속 인연을 맺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환상적인 설정은 흔히 영화적이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정적인 방향으로 활용됩니다. 마치 오래된 편지지에 눅눅한 잉크가 번지듯, 윤재와 해솔의 이야기는 천천히 깊이 있게 번져갑니다.
서윤재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중, 낯선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편지의 발신인은 바로 1930년대에 살고 있는 박해솔.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서로의 세계와 마음을 알게 되고,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서로의 인생에 스며듭니다. 이 독특한 타임슬립 설정은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이해’와 ‘공감’이라는 다리로 기능하며, 시대와 배경, 언어가 달라도 인간의 본질은 같다는 진실을 조용히 증명합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타임슬립이라는 장르적 설정이 현실의 문제를 도피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오히려 그것을 직시하고 풀어내기 위한 서사의 열쇠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윤재는 해솔과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놓쳐온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고, 해솔은 윤재를 통해 삶의 의미와 희망을 붙잡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아가는 두 소녀는 결국, ‘지금’이라는 시간을 더 단단히 살아가기 위한 용기를 나누게 됩니다.
편지가 전하는 것, 서로의 아픔을 껴안는 우정
이 작품에서 ‘편지’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치유이고, 이해이며, 우정 그 자체입니다. 윤재와 해솔은 실제로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가장 깊이 알아주는 친구가 됩니다. 이 놀라운 감정적 연결은 종이 위의 활자 하나하나가 전하는 진심 덕분입니다.
박해솔은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소녀입니다. 그의 편지는 시대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사랑, 연대, 저항, 꿈이라는 순결한 단어들이 살아 숨 쉽니다. 윤재는 그런 해솔의 편지를 읽으며, 자신이 겪은 상실과 고립감에서 점점 벗어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의 편지는 ‘살고 싶다’는 말로 연결되고, 그것은 곧 ‘너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사랑보다 더 깊은 우정’에 있습니다. 특히 여성 간의 우정이 중심에 있다는 점은 청소년 문학에서 보기 드문 구조이자, 매우 소중한 서사적 자산입니다. 이꽃님 작가는 여성 청소년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되어줄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 우정은 사회와 가정, 시간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습니다.
또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점점 강해집니다. 윤재는 친구 해솔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점점 능동적인 소녀로 성장해 가고, 해솔 역시 윤재와의 편지를 통해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가 가진 가장 찬란한 메시지입니다. "우정은 타인의 세계를 건너가는 일이다."
나를 이해하는 순간, 나는 조금 자란다
성장소설로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독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를 아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윤재는 해솔의 삶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해솔은 윤재의 세계에서 ‘변화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합니다. 즉, 두 사람의 성장은 단순히 개인의 내면적 성숙에 머물지 않고, 역사의식과 사회적 감각까지 확장됩니다.
윤재는 처음엔 타인과 단절된 채 살아가지만, 해솔과의 인연을 통해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주변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교사, 친구, 가족, 심지어 죽은 부모님에 대해서도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해솔 또한 시대적 억압 속에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통해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감정을 깨닫게 되고, 그것이 삶을 붙잡는 원동력이 됩니다.
작품 속 편지들은 짧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감정의 흔적이며, 서로를 이어주는 희망의 끈입니다. 두 인물은 편지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고, 결국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리고 독자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성장의 순간을 시간이라는 장치로 확장시켜, 감정의 결을 더욱 깊이 있게 다루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어떻게 구원하는가”에 대한 진심 어린 대답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성인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편지를 쓰듯 살아가자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단순히 청소년 문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 잊고 지낸 진심을 되찾게 해주는 문학입니다. 시간을 건넜지만 결코 멀지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 그 안에는 지금도 우리가 붙잡고 싶은 하루, 전하고 싶은 말,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아직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나처럼 혼자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질 겁니다.
"나는 네게 갈 수 있어. 세계를 건너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