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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양귀자 복잡한 감정을 다루는 장편소설

by 독서 좋아 2025. 5. 19.

『모순』은 1998년 출간 이후 25년 넘게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양귀자 작가의 대표 장편소설입니다. 삶의 아이러니와 감정의 복잡성을 ‘모순’이라는 단어 하나에 압축한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세대 간 충돌, 가족의 갈등, 연애의 진실, 그리고 ‘나’를 향한 탐색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모순』은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결국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라는 묵직한 통찰로 다가옵니다.

 

‘모순’이라는 제목에 담긴 인생의 구조

『모순』은 단순한 연애소설도, 가족소설도 아닙니다.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존재, 그 안에 겹겹이 쌓인 감정과 관계의 복잡함을
"모순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통합해내는 성숙한 문학입니다. 주인공 안진진, 26세의 평범한 직장인 여성. 그녀는 인생의 결정적인 질문들—

 

“사랑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모든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명쾌하지 않습니다. 어딘가 뒤틀려 있고, 찜찜하고, 때로는 서로 충돌합니다. 그것이 바로 모순입니다. 양귀자 작가는 단순히 이 단어를 철학적으로 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도로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모순’을 몸으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과 관계 – 이해할 수 없지만 떠날 수 없는

『모순』의 주요 서사는 안진진의 연애와 가족 이야기입니다. 연애 파트에서는 남자친구 장두연과의 관계가 중심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감정의 밀도는 다르고 삶의 리듬도 맞지 않습니다. 장두연은 다정하지만 중심이 없는 남자, 진진은 외로움을 견디지만 의심을 품은 여자. 둘은 서로를 향하지만, 동시에 상처를 주고 마침내 이 사랑은 완전한 이해 없이도 지속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작가는 이 연애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해와 오해, 기대와 실망, 애정과 무관심이라는 모순들로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족 서사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축입니다. 진진의 아버지는 가정을 버리고 떠난 인물입니다. 어머니는 희생으로 남은 가족을 지켰지만, 딸에게는 끊임없는 죄책감을 남깁니다. 진진은 그런 부모를 증오하면서도, 그들 안에서 자신을 찾습니다. 특히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가족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도 따뜻할 수 있는지를 동시에 드러내며,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모순은 도피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

이 작품이 뛰어난 이유는 ‘모순’을 단지 피하고 싶은 삶의 결함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진진은 처음엔 그 모순을 거부합니다. 왜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지, 왜 사랑이 기쁘면서도 아픈지, 왜 가족이 무거우면서도 지켜야 하는 건지—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소설 후반부에 이르러 진진은 그 모순이 곧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입니다.

 

  • 사랑은 때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한 선택을 요구하며,
  • 가족은 완전하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를 정의하며,
  •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합니다.

 

진진은 끝내 자신이 사랑한 남자와 이별을 선택하고,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그의 흔적을 가만히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갈등과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첫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것이 『모순』의 결론이자 양귀자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문체와 구성 – 쉽게 읽히지만 깊게 남는다

『모순』은 짧은 일기처럼 서술되는 1인칭 구성입니다. 이 덕분에 독자는 진진의 내면을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생생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양귀자 작가 특유의 문체는 겉보기에 간결하고 담백하지만, 그 문장 속에는 수많은 감정의 층위와 사회적 배경이 압축돼 있습니다. 또한 세대 간 갈등,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적 위기, 감정의 미성숙과 책임 사이의 균열 등을 지나치게 비판하거나 설교하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모순』은 문학성과 대중성, 사유성과 감정성을 모두 갖춘 대한민국 대표 성장소설로 오랫동안 읽히고 있습니다.

 

모순 속에서 우리는 어른이 된다

『모순』은 단순히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환원되기엔 너무 깊고, ‘여성 서사’로만 규정하기엔 너무 보편적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겪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설명되지 않는 선택들, 그 모든 충돌과 균열을 있는 그대로 껴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법, 그것이 바로 어른이 된다는 것.”

 

그렇기에 『모순』은 십대의 마지막에, 이십대의 갈피에, 삼십대를 돌아보며, 누구든 한 번쯤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