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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나는 살아 있다." 성장 이야기, 라이프 재킷

by 일상 좋아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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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작가의 장편소설 『라이프 재킷』은 생존을 위한 본능, 소외된 감정, 그리고 다시 연결되는 관계를 통해 진정한 ‘살아 있음’의 의미를 묻는 청소년 성장소설입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내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십대들의 감정은, 현실의 고통을 묵묵히 견디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지금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던지는 단단한 메시지입니다.

 

“나는 살아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계속 걸어간다.”

 

생존을 위한 본능, 재킷 하나에 담긴 의미

『라이프 재킷』의 무대는 단순한 학교나 가정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극한의 상황, 재난 현장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여느 날처럼 떠난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배 탈출 사고. 주인공들과 몇몇 아이들은 구조되지 못한 채 고립된 섬에 표류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작가는 그 어떤 장치보다도 현실적인 재난 상황을 통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살고 싶다’는 본능을 드러냅니다. 생존 소설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이 책이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살아남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민낯입니다. 누구는 리더가 되려 하고, 누구는 침묵을 선택하고, 누구는 타인의 몫까지 빼앗습니다. 이 극한 상황 속에서 “라이프 재킷”, 즉 구명조끼는 단순한 물리적 장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는 갖고 누구는 갖지 못한 생존의 상징이자, 때로는 살기 위한 선택의 기준이 되어버린 비정함 그 자체입니다. 청소년 독자들은 이 극단적 배경 속에서 자신을 대입해보게 됩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이현 작가는 그런 질문을 은근하게 독자에게 던지며, ‘사람은 생존의 순간에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가’와 ‘그러면서도 왜 우리는 타인을 도우려 하는가’를 서사 전반에 걸쳐 탐색합니다. 『라이프 재킷』은 겉으로는 재난 생존 소설 같지만 그 안에는 사람 사이의 경계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목숨의 무게에 대한 묵직한 사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상실이 만든 거리, 살아남은 자의 고통

이 작품에서 가장 깊은 감정선은 ‘남겨진 자의 심리’입니다. 주인공 중 몇 명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구조된 후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사고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특히 정신적 생존이란 것이 육체적 생존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소설은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던 십대가 친구의 시신을 안고 몇 날 며칠을 견디는 장면, 구명조끼가 있었지만 친구에게 넘겨준 선택의 후회, 살아 돌아온 후 친구의 가족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심리적 거리감. 이런 복합적인 상실의 감정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 죄책감, 공허함, 무기력함으로 이어집니다.

 

이현 작가는 특유의 절제된 문체로 이 모든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합니다. 감정을 억지로 폭발시키지 않고, 오히려 인물들이 침묵하거나 자책할 때 더 큰 울림을 줍니다. 『라이프 재킷』의 인물들은 울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잃었기 때문에, 울면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의 흐름 속에서 상실은 결국 회복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제가 됩니다. 작품은 말합니다.

 

“살아남은 자는 살아내야 한다.”

 

이 말은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말이 얼마나 절박하고 인간적인 외침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함께였기에 끝내 살아갈 수 있었다

『라이프 재킷』은 ‘회복의 소설’입니다. 비극은 일어났고, 누군가는 죽었으며, 누군가는 살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후입니다.

 

“그 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작품 속 십대 인물들은 단순히 구조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조 이후에도 긴 회복의 여정을 겪습니다. 사고에 대한 언론의 왜곡, 어른들의 무책임, 친구들과의 거리감.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고립된 섬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시 서로를 찾습니다.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 같은 고통을 견뎠던 사람들, 같은 죄책감을 안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현 작가는 여기서 ‘공감’과 ‘공존’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해도, 옆에 있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회복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히 전합니다. 특히, 한 인물이 마지막에 친구에게 남긴 대사는 이 소설의 핵심을 압축합니다.

 

“너는 내 구명조끼였어.”

 

이 말은 단순한 은유가 아닙니다.

 

정말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 눈빛, 손길이 어떤 이에게는 죽지 않게 해주는 정신적 라이프 재킷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오늘 누구의 구명조끼인가

『라이프 재킷』은 단순한 생존 서사, 재난물, 청소년 픽션이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묻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버티게 했고, 또 타인을 살게 했는가.


그리고 지금, 누구를 구하고 있는가.

 

이 소설은 말합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용감하다.”


그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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