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걷고 이해로 가는, 한 사람의 사용법 안내서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사용 설명서’라는 말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곧 그 제목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누구에게도 사용 설명서를 주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의 뇌를 이해하고 삶을 조율해나가기 위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과 실패, 그리고 오해를 경험해야만 한다.
『ADHD 사용 설명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 혹은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이해의 시작점’이 되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ADHD에 대한 의학적 정의나 딱딱한 이론으로 가득한 전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ADHD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구체적인 삶의 결, 감정, 무너짐과 회복의 리듬을 현실의 언어로 풀어낸 안내서에 가깝다. 그렇기에 읽는 동안 나는 단지 정보를 얻는 독자가 아니라 이들의 고군분투에 조용히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책은 ADHD가 단순히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들’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반복되는 실수, 끝맺지 못하는 일, 지각, 충동적 말투, 감정 기복. 겉으로 보이는 이 모든 문제들은 사실 ADHD 뇌의 ‘차이’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특성이며 그것은 결코 게으름이나 무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반복해서, 그러나 다정하게 말해준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단지 증상이 아니라 그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의 복잡한 하루하루다.
책의 장점 중 하나는, ADHD의 증상을 단순 나열하지 않고 그 증상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감정적 파장을 일으키는지까지 연결해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무언가를 자꾸 잊는다는 사실이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자책으로 이어지고, 반복된 실패감이 자신감 저하로 번진다"고 말한다. 이런 설명은 독자가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동시에, ADHD를 겪는 당사자에게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존재의 안정감을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은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해결책보다 앞서 필요한 건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많은 자기계발서나 심리서가 ‘어떻게 고칠까’에 집중한다면 『ADHD 사용 설명서』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우리에게 완벽하게 바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 뇌의 패턴을 파악하고, 실패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며, 나에게 맞는 환경을 조율해가는 법을 설명한다.
책에는 실제 사례와 구체적인 팁들도 풍부하다. 시간 관리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시각 타이머’를 사용하는 방법, 할 일을 시작하기 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 지나친 감정 기복을 완화하기 위한 일기 쓰기 등,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실천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실천의 목적은 ‘정상인처럼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답게 기능하면서 삶을 덜 힘들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현실적이고 따뜻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설명’도 충실히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족, 연인, 동료 등 ADHD 당사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매우 실용적이고 필요한 안내서다. 단순히 배려하라는 수준이 아니라, ADHD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점에서 『ADHD 사용 설명서』는 단지 ‘당사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다리를 놓는 책이기도 하다.
서술의 전체적인 문체는 친절하면서도 진중하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지만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정보 전달에 집중하면서도 독자의 내면을 놓치지 않는다. 그 균형 잡힌 톤 덕분에 책은 끝까지 단단하고 따뜻한 언어를 유지하며, 독자에게 지침서 이상의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ADHD를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더 너그러워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용 설명서’를 갖고 있지 않다. 살아가면서 비로소 배우고 익히고 조심스럽게 알아가야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서로를 오해하고, 때로는 멀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당신이 다르게 작동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설명서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설명서를 스스로 써내려갈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