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장편소설 리뷰

by 독서 좋아 2025. 5. 15.

현실의 악몽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아이, 그에게 열린 마법의 빵집 문
그러나 빵집조차 끝내 그를 구원하지 못한다. 마법은 달콤하지만, 진실은 씁쓸하다.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문학의 틀을 뒤흔든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가출한 소년의 방황이나 판타지 세계에서의 기묘한 체험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현실에서 밀려난 소년이 마법이라는 대안적 세계에서 어떤 진실을 마주하고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여정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마법의 빵집’이라는 동화 같은 배경은 독자를 단숨에 끌어당기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 이면에 자리한 가족의 폭력, 인간의 욕망, 기억의 저주가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결국 이 소설은 환상이 아닌 현실을 다룬다.


‘마법도 현실을 구할 수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고 선택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지독한 성장소설이다.

 

1. 도망치는 소년 – 현실이 만들어낸 판타지의 입구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조차 명확히 주어지지 않는 ‘소년’이다. 그는 어머니를 여읜 뒤 재혼한 아버지와 새어머니, 의붓여동생과 함께 살지만 정서적 고립과 언어적 폭력 그리고 의붓가족의 적대적 시선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의붓여동생을 성추행했다는 허위의 누명을 쓰고 결국 집을 뛰쳐나오게 된다. 소년은 무작정 뛰쳐나온 동네에서 우연히 한 빵집 안으로 몸을 숨기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 마법의 빵이 만들어지는 기이한 공간이다.

 

이 지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소년은 명백한 가해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니라 억울한 낙인과 침묵에 갇힌 채 추방당한 피해자였다. 그렇기에 그가 도착한 ‘빵집’은 단순한 탈출구가 아니라 그의 고통과 억울함을 가시화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2. 마법의 빵 – 인간 욕망의 반죽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든 일이 가능하다. 시간을 되돌리는 쿠키, 기억을 지우는 빵, 누군가를 조종할 수 있는 초콜릿등…. 이 마법의 빵들은 각기 다른 ‘인간의 욕망’을 반죽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마법을 단순한 판타지적 장치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인간의 민낯과 이기심, 비겁함, 그리고 반복되는 실패의 구조를 철저히 해부한다. 그 빵을 먹고 나면 무엇이든 해결될 것 같지만 실상 결과는 그렇지 않다.


마법은 결코 고통을 없애주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마법이 소년을 포함한 사람들의 '바람'을 그대로 이뤄주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더 깊은 함정으로 이끄는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은 한마디로 말해 ‘위장된 지옥’이다.

 

3. 파랑새와 마법사 – 치유가 아닌 경고의 존재들

빵집에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 없이 ‘마법사’라 불리는 남자, 그리고 그를 돕는 ‘파랑새’ 소녀. 이들은 흔히 기대되는 ‘멘토’나 ‘구원자’가 아니다. 소년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언제나 선택의 결과는 네 몫이라는 태도를 견지한다. 파랑새는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그 다정함은 전적으로 소년을 지켜주지 않는다. 마법사는 많은 걸 알고 있지만 단 하나의 정답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항상 말한다.


“다시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 확신할 수 있느냐?”

 

이들은 마치 판타지 세계에 존재하는 안내인이지만 실제로는 소년의 내면을 반영한 양심 혹은 이성의 형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달콤한 마법을 주면서도 끝까지 책임을 묻는 존재들.


그것이 위저드 베이커리가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님을 보여주는 장치다.

 

4. 섬뜩한 동화, 잔인한 현실 – 한국형 ‘헨젤과 그레텔’

이 소설은 구병모 작가가 ‘잔혹동화’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실험적 형식의 소설이기도 하다. ‘빵집’, ‘달콤한 향기’, ‘도망친 아이’ 등의 설정은 고전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소설의 빵집은 마녀가 사는 집이 아니라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기억의 지옥’이 숨겨진 공간이다.

 

달콤한 냄새로 독자를 유혹하지만 한 입 베어 문 순간 드러나는 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다. 심사위원들이 “섬뜩하고 새로운 청소년문학”이라 평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은 달콤함 뒤에 숨어 있는 삶의 냉혹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5. 반복되는 선택, 되돌릴 수 없는 고통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지만 모든 기억을 지우고 돌아가야 한다는 규칙이다. 이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의 트릭이 아니라 ‘성장은 고통을 겪고도 그것을 기억해야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만약 기억 없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우리는 결국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같은 실수를 다시 할 것이다.

 

이 소설의 마법은 무한 회귀가 아니라 회귀를 통해 ‘선택의 무게’를 각인시키는 장치다. 소년은 그 마법 앞에서 갈등한다. 기억 없이 도망친 삶을 다시 살 것인지. 지금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국 그는 기억을 선택한다. 고통을 품은 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결말이며 소년의 진정한 성장이다.

마법은 현실을 없애지 못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우리가 기대했던 마법의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마법이란 결국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며 진짜 구원은 현실과 기억을 견디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 어떤 빵도 소년을 완전히 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에서의 경험은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자각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말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너는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네가 내려야 할 선택은 결국 너만이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