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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가치를 일깨우는 소녀, 『모모』

by 독서 좋아 2025. 5. 6.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되묻는 고전,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출간 50주년을 맞아 아름답게 다시 태어났다. 독일 아동문학의 전설이라 불리는 미하엘 엔데가 1973년에 처음 세상에 내놓은 이 작품은, 단순한 동화가 아닌 현대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철학적 우화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은 기존의 감동과 지혜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욱 세련된 번역과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 특히 '시간'이라는 이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테마를 매개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들, 그리고 작지만 위대한 저항

『모모』는 도시에 홀로 나타난 이름 모를 소녀 ‘모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별히 똑똑하거나 강하지도 않은 이 소녀는 단지 잘 들어주는 능력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이들은 그녀와 함께할 때 상상력과 놀이를 되찾고, 어른들은 그녀 앞에서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받는다. 그렇게 모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간다.

 

하지만 어느 날, ‘회색 신사들’이라는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도시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절약하라’고 속삭이며, 삶의 여유와 관계, 꿈과 감성을 빼앗는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냉소적이며,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간다. 아이들도 놀지 않게 되고, 어른들도 더는 진심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미하엘 엔데는 사회 풍자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회색 신사들은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생산성, 현대인의 조급증을 의인화한 존재다. 그들이 말하는 ‘절약’은 진정한 시간의 가치와는 동떨어진 개념이다. 시간은 단지 쌓아둘 수 있는 물질이 아니며, 진짜 시간은 사랑, 대화, 여유, 상상, 관계 속에서 흐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 소설은 끊임없이 되새긴다.

 

시간의 꽃을 되찾기 위한 모모의 여정

모모는 회색 신사들의 정체를 눈치채고, 그들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이 여정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유와 인간성의 회복을 향한 발걸음이다. 모모는 우연히 만난 시간의 수호자 ‘시간의 마스터, 호라 박사’를 통해 시간의 본질과,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선물을 어떻게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제 모모는 시간을 훔쳐가는 회색 신사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검도 쓰지 않고, 칼도 들지 않는다. 그녀의 무기는 오직 사랑과 믿음, 침묵 속의 경청, 그리고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마음이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더욱 특별하고 강력한 이유다. 모모는 세상을 바꾸는 싸움을, 어린 소녀의 순수한 힘으로 감행한다.

 

모험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내 시간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모모』는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서 우리 내면의 시간 감각을 깨우는 철학서이기도 하다.

 

🌱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문장들

『모모』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시적이고, 독자들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싸늘할 정도로 현실을 꿰뚫는다. “시간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생명은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은, 이 책이 전하려는 핵심을 가장 응축적으로 담고 있는 문장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명문장들이 독자의 마음에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꽂힌다. 특히 어른이 된 독자에게 『모모』는 읽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책이다. 어린 시절에는 회색 신사와 모모의 모험에 몰입하게 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면, 그 안에 감춰진 삶의 철학과 존재에 대한 통찰에 더욱 크게 감동받는다.

 

📖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고전의 힘

『모모』가 출간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이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더욱 절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알림 속에서 점점 산만해지고 있으며, 효율과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쪼개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모』는 단지 고전문학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향한 경고이자 처방전이다. 미하엘 엔데는 이 이야기를 통해 ‘진짜 시간’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과 노는 순간, 친구와 웃는 시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틈,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바로 그때 피어나는 꽃과 같다는 것을 말해준다.

🪄 총평: 시간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경험

『모모』는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삶의 나침반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시간을 쫓기듯 소비하며 살고 있는가? 그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50주년 개정판 『모모』는 이 질문을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따뜻하고도 단호하게 던진다. 그리고 말한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당신의 시간을 사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