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시선』은 시각장애를 가진 중학생 소녀 ‘율’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특별한 방식을 통해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여겨온 감각과 소통, 관계, 그리고 성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청소년문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다름과 이해’를 섬세하고도 따뜻하게 다루는 이 소설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작품은 겉보기에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보지 못하는’ 소녀 율의 내면에서 그려내며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시각장애라는 설정을 자극적이거나 비극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율이라는 인물이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자연스럽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작가는 탁월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 율이 바라보는 세상: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
율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감각 언어’로 세상을 이해해왔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예쁘고 잘생겼는지가 아니다. 대신에 목소리의 떨림, 발걸음 소리의 무게, 옷깃 스치는 소리 같은 것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율의 관찰 방식이 오히려 더 섬세하고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의 기분 변화를 작은 숨소리에서 감지하거나 날씨의 변화를 피부에 닿는 공기의 움직임으로 알아차리는 장면들은 시각장애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서, 인간 감각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율의 감각 세계를 단순히 ‘신기한 능력’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있는 ‘느낌의 힘’을 언급하며, 율의 방식이 특별하기보다는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공감 능력의 한 형태임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독자에게도 감각의 틀을 깨는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 차별 아닌 다름, 보호 아닌 존중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율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형성이다. 율은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다름이 자신을 규정하는 전부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종종 ‘보호’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특별 취급하거나 과도한 배려를 하려 든다.
작품 속에서 율이 경험하는 갈등은 단순히 친구들과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불안과 거리감에서 시작된다.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도 가끔은 율에게 실수하고, 선생님은 율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묻기보다 대신 결정해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현실 속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진정한 ‘배려’란 무엇인지, 장애를 가진 친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묻는다.
🧶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진짜 시선이 시작된다
『율의 시선』이 감동적인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율의 고통이나 극복 서사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율은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성장하거나 모두의 눈에 ‘영웅’처럼 보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하고, 작은 변화와 감정의 진동 속에서 천천히 흐른다.
하지만 그 느린 흐름 안에는, 진정한 관계의 형성이 존재한다. 친구들과의 갈등, 가족과의 소통, 교사와의 대화 등에서 율은 차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도 율의 방식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 상호 이해의 과정은, 시각이라는 감각 없이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된다.
🪞 우리 안의 ‘율’을 마주하기
『율의 시선』을 덮은 후, 가장 오래 남는 여운은 율이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율의 감각’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가? ‘정상’이라는 기준에 갇혀 누군가의 다름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다름’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율을 통해 우리는 배우게 된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으며,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 총평: 느리고 조용하지만 깊게 파고드는 문학
『율의 시선』은 눈에 띄는 사건이나 반전은 없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시선의 태도’를 조용히 흔드는 작품이다. 다름을 특별함으로 만드는 감수성, 감각의 다양성, 그리고 진정한 관계의 형성이라는 주제는 청소년을 위한 책이면서도 성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율’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 자신도 더 섬세한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당신의 ‘시선’이 바뀌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