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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깊이 있는 장편 소설 손원평 작가님

by 독서 좋아 2025. 5. 11.

감정 없는 소년이 전하는 인간다움의 본질

 

책의 배경과 의의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한국 청소년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품입니다. 감정이 없는 소년 윤재의 시선을 통해 ‘감정이란 무엇인가’,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이 소설은 국내에서만 100만 부를 돌파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전 세계 30개국에 번역돼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을 실현했습니다. 단순히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를 넘어 윤재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잊고 지낸 인간 본연의 감정과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1.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의 시작

윤재는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를 가진 열여섯 살 소년입니다. 뇌 속 편도체, 즉 ‘아미그달라’가 비정상적으로 작게 태어나 분노, 공포, 기쁨, 슬픔과 같은 기본 감정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사건들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울어도, 아파도, 기뻐해도 그는 그 감정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윤재를 엄마와 할머니는 그저 ‘다르게 태어난 아이’로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사랑과 훈련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윤재는 규칙을 정해 표정을 연습하고 상황마다 어떤 감정을 보여야 하는지를 외우며 살아갑니다. 비인간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인간적인 가족은 없습니다.

 

하지만 윤재가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은 크리스마스이브. 그날의 비극은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그의 보호막이었던 엄마와 할머니가 한 사건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윤재는 홀로 남겨집니다. 더 이상 감정을 대신 해줄 사람도 세상과의 완충지대도 없는 윤재는 본격적으로 ‘자신’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2. ‘괴물’이 되어버린 윤재, 그리고 또 다른 괴물 곤이

윤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아이’, ‘괴물’이라는 낙인을 찍힙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의심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의 존재는 곧 ‘비정상’, ‘무서움’으로 치환됩니다. 그는 멍하니 침묵하지만 세상은 그를 격리합니다.

 

그런 윤재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인물이 바로 ‘곤이’입니다. 곤이는 윤재와 정반대의 존재입니다. 감정이 넘쳐서 자주 분노하고 폭력을 일삼으며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곧 곤이의 내면이 누구보다 연약하고 순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겉으로는 날카롭고 거칠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하는 소년. 윤재와 곤이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로서 서로를 통해 자신이 살아갈 이유와 방향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일종의 ‘거울’과 같습니다. 감정이 없는 윤재는 곤이의 넘치는 감정을 관찰하며 배우고 곤이는 윤재의 담담함 속에서 진짜 위로를 받습니다. 둘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깊은 교감이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몬드』가 보여주는 ‘비정상’ 속의 ‘진짜 감정’입니다.

 

3. 감정이 없는 소년이 느끼게 되는 감정의 무게

윤재는 사랑도, 분노도, 두려움도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곤이를 통해 그는 서서히 감정의 결을 이해해갑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억’이나 ‘훈련’의 영역이 아닌 진짜 감정입니다. 곤이가 위기에 빠졌을 때 윤재는 이유를 모르면서도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자각에 다다릅니다.

 

특히 도라라는 소녀와의 관계는 윤재에게 처음으로 ‘연애감정’을 심어줍니다. 윤재는 도라에게 끌리고 도라가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며 감정이라는 세계의 문을 엽니다. 물론 그는 여전히 그것을 정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어설픈 언어와 행동 속에서 우리는 윤재가 ‘감정’이라는 말을 몰라도 ‘감정’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 장면들을 통해 ‘감정이란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독자로 하여금 윤재라는 특별한 캐릭터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가 됩니다.

 

4. 『상자 속의 남자』 – 외전을 통한 또 다른 해석

이번 재출간판에 실린 외전 『상자 속의 남자』는 본편의 서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윤재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사건을 한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이야기는 ‘인간은 어떻게 타인을 돕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의 한 실수로 인해 평생 타인과 선을 긋고 살아온 한 남자가 우연히 윤재의 사건을 목격하면서 겪게 되는 내면의 변화. 이 외전은 독자에게 “감정은 전염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아몬드』의 세계를 확장시켜줍니다. 단순한 보완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완결된 감정 서사입니다.

 

5. 감정 없는 문장으로 가득 찬 감정의 서사

이 책의 또 다른 미학은 ‘문체’에 있습니다. 윤재는 감정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문장은 극도로 단순하고 건조합니다. 수사적 장식도 없고 주관적 판단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담백한 문장 속에서 독자는 더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윤재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독자가 대신 느끼게 되는 구조. 그래서 『아몬드』는 감정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감정을 체험하게 만드는 매우 독창적인 방식의 문학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지닌 힘이며 감정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방법입니다.

윤재는 우리다

『아몬드』는 특별한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윤재처럼 감정을 숨기고 표현을 두려워하며 때론 잘못된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곤이처럼 감정에 휘둘리고 상처받고 방어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에게 윤재는 말합니다. “괜찮다 감정을 몰라도. 네 방식대로 사랑하고, 슬퍼하고, 살아도 된다고.”
그래서 『아몬드』는 고백입니다.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전하지 못한 감정에 대한 오랜 고백.

읽고 나면 그 감정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뒷모습이 오래도록 떠오르는 책. 『아몬드』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이 감정을 잃어버렸다고 느꼈다면 이 책은 분명히 당신을 위한 책입니다.